top of page

화학교육/화학컬럼
화학컬럼


선(線)의 세계(2026년 8월호)
“원자”는 어떤 존재일까요? 19세기 말의 화학자들은 원자를 그저 원자량, 원자가 등 몇 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는 단순한 입자로 생각했습니다. 화합물의 변화무쌍한 세계를 설명하기에는 그 정도면 충분했죠. 하지만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원자의 기존 개념은 크게 뒤집히게 됩니다. 이 과정에는 이웃 학문인 물리학의 역할이 컸습니다. 19세기 말의 물리학자들에 의해 X선과 방사능이 발견되면서 원자의 내부 구조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그에 따라 화학계 역시 큰 개념적 혁명을 겪어야 했죠. 오늘은 이 모든 일의 효시가 된 1890년대의 사건들을 다뤄보도록 하겠습 니다.[참고문헌 1]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19세기 초부 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프리즘으로 백색 빛을 분해하였을 때 붉은색 너머, 혹은 보라색 너머의 영역에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작용을 할 수 있는 빛이 존재한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죠. 붉은색 너머의 빛은 열을 전달하기에


근대 한국인이 접한 새로운 화학물질의 이름(2026년 7월호)
들어가며 지난 연재에서는 “소다” 또는 “나트륨”, 그리고 “포타시” 또는 “칼륨”의 사례를 중심으로, 화합물에 대한 인류의 지식이 축적되면서 그 이름이 어떻게 다듬어져 왔는지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이렇게 서양에서 다듬어진 원소와 화합물의 이름이 한국에 소개된 양상을 살펴보겠다.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동안 우리 나라에서 전문적으로 화학을 연구할 토대는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여, 이 시기 원소와 화합물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는 학계보다는 산업계와 대중의 시점에서 풀어낼 것이다. 가성소다 또는 “양잿물” 개항 이후 서양 문물이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면서, 한반도의 대중들은 값싸고 신기한 새로운 물건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한발 앞서 산업화를 시작하고 상업을 진흥한 일본은 영국에서 수입한 면직물(일명“옥양목”), 그리고 자국에서 생산한 유리, 석유제품, 의약품, 장류, 주류, 성냥 등 다양한 소비재로 한국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왜 수은은 액체일까
과학은 호기심에서 시작된다고들 말한다. 언제나 ‘왜?’ 라는 궁금증을 이어가며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며 화학자 들은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과 변화를 해석하려 한다. 하지만 교육이나 육아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 구나 공감할 것이, 과도하게 이어지는 ‘왜?’라는 질문은 피로감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 당연한 사실임에도 명 확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는 순간 등골을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체험이 생겨나기도 한다. 너무나 자연적이고 당 연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당연하지만 풀어내 기 어려운 지식이 강요된다. 예를 들어 상온에서 유일한 액체 금속이라는 수은(Hg)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지만 도대체 왜 수은만이 액체인가 는 간단히 답변하기 어렵지 않은가? 상대성이론과 원자 수은은 원래 액체로 존재한다기에는 불편한 사실이 남 아있다. 상온에서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단 두 가지 원소 는 17족의 브로민(Br


물질 없는 화학(2026년 5월호)
1890년대의 화학은 구조화학에 분자의 입체 구조까지 포함시키면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 모든 이론의 기반에는 “원자” 개념이 있었습니다. 1860년대에만 해도 실재는 확인할 수 없지만 유용한 도구 정도로 취급받던 원자[참고문헌 1]는, 1880년대를 거치는 동안 그 공간적인 배치가 화학적 성질을 설명할 수 있음이 밝혀지면서 보다 실제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화학 한쪽 구석에서는 원자 개념을 두고 뜨거운 논쟁이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이 논쟁의 중심에는 탁월한 물리화학자 오스트발트가 있었죠. 그는 원자 개념을 거부하고 에너지를 중심으로 모든 화학을 다시 쓰고자 했습니다. 오스트발트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오늘 글에서는 그를 중심으로 1890년대의 논쟁을 살펴보고자 합니다.[참고문헌 2] 오스트발트가 처음부터 원자 개념에 의심을 품었던 것은 아닙니다. 1880년대 전반까지 그가 수행한 연구에서는 당시 화학계에서 받아


잿물, 탄산수, 중조(2026년 4월호)
잿물, 탄산수, 중조 김태호 |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부교수, taehokim@jbnu.ac.kr 들어가며 산과 염기에 대한 이론이 확립되기 한참 전에도 인류는 여러 가지 산과 염기의 존재를 깨닫고 그 활용법을 익혔다. 식품을 보존하고, 신체나 도구를 깨끗이 하며, 의약품을 만들고, 금속이나 유기물을 녹이고, 유리나 도자기와 같은 귀한 기물을 만드는 데 첨가하고, 가죽을 무두질하며 염색과 같은 화학 반응을 촉진하는 등 산과 염기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했다. 이 요긴한 물질을 만들고 보관하고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은 연금술사나 약사들의 살림 밑천이 되었고 귀중한 비밀로 조심스럽게 전승되었다. 염기성 수용액을 만드는 흔한 방법은 고체 상태의 염(salt, 鹽)을 물에 녹이는 것이었다. 사실 이 문장은 동어반복이다. 염기(base, 鹽基)라는 말이 “산과 중화반응을 일으켜 염과 물을 만드는 받침[基]이 되는 물질”이라는 뜻으로 고안된


교과서 밖의 유기화학(2026년 3월호)
학문을 파헤치는 방식은 다양하다. 대학교 공부와 같이 분야별로 한 과목씩 공부할 수도 있고, 시간과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며 선배 화학자들의 발자취를 연결하는 것도 흥미롭다. 하지만 오랜 공부는 우리를 지치게 만들며,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공부량을 해치우느라 미처 이야기하지 못하고 남겨지는 흔적들이 아쉽다. 우리는 이를 일화나 야사로 표현한다. 확실한 것은 언제 들어도 흥미롭다는 것. 그리고 화학 반응의 명칭 하나에 남겨진 마지막 흔적이 생각보다 더 거대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천재적인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동질감과 위안으로 한 걸음 더 공부를 이어갈 자신감을 건네주기도 한다는 점이다. 러시아 근대 화학 황금기 흔히 러시아는 현대 과학의 최전선이라는 이미지보다는 불곰, 보드카, 그리고 추운 날씨 정도로 연상된다. 하지만 19세기 러시아 제국은 의외로 화학 분야에서는 격렬한 격전지 중 한 곳으로 치열한 학문적 발전과 위대한 화학자들이


공간을 인식하자 보인 것들(2026년 2월호)
오늘날 우리는 분자의 구조를 3차원 공간 속에서 이해 하는 데 익숙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1860년대에만 해도 “구조”라는 단어는 단순히 원자와 원자의 연결 관계를 가리킬 뿐, 실제 물리적 공간에서의 입체 구조를 의미하지 않았죠. 하지만 1874년 판트호프와 레벨이 탄소 주위의 원자들이 정사면체 구조를 이루어야 한다는 이론을 제시했고, 이후 이 개념에 기반하여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글에서 살펴본 피셔의 기하 이성질체 연구였죠. 이제 1890년경이 되면 탄소의 정사면체 구조는 화학계에서 확고하게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1890년대에는 이 개념을 확장하고 체계 화하려는 움직임들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글에서는 그 중 세 가지를 골라 살펴보려고 합니다.[참고문헌 1] 첫 번째 움직임은 유기화학의 명명법(nomenclature)을 정리하려는 움직임입니다. 1870년대와 1880년대를 거치면서 새로이 합성된 유기화합


초산을 만드는 원소, 질소(2026년 1월호)
들어가며 우리는 매일 수많은 물질과 접촉하고 그것들을 다루며 살아간다. 그래서 화학은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을 설명할 수 있는 학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마주치는 여러 가지 물질들 가운데는 근대 화학이 성립하기 한참 전부터 친숙하게 사용해 온 것들도 많이 있다. 근대 화학의 명명법에 따라 모든 물질의 이름을 정리할 수 있다면 이들을 인식하고 사용하는 데 혼동이 없겠지만,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먼 옛날부터 익숙하게 써 온 이름들을 과학자들 마음대로 하루아침에 바꾸도록 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대한화학회에서 소듐과 포타슘 등 미국식으로 원소기호 이름을 바꿀 것을 권고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나트륨 줄이기 운동본부” 는 여전히 이름을 바꿀 기미가 안 보이고, “가리비료”는 가까스로 “칼륨비료”로 바꾸어 부르는 데까지는 이르렀으나, “포타슘 비료”라는 이름이 언제쯤 농민들의 입에 익을 지는 기약이 없다. 하지만 과학사의 대상으로서


공간의 화학(2025년 12월호)
최정모 | 부산대학교 화학과 부교수, jmchoi@pusan.ac.kr 19세기 후반의 화학은 구조 이론의 토대 위에 쌓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기서 “구조”란 3차원 구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원자와 원자의 연결 관계를 가리킵니다. 케쿨레는 1865년 탄소가 네 개의 손을 가지고 다른 원자들과 결합할 수 있다는 이론을 제안했고, 이를 기반으로 유기화학자들은 많은 유기화합물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구조”가 실제로 물리적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케쿨레를 비롯한 대부분의 화학자들이 말을 아꼈죠. 그 때 젊은 화학자 두 명이 등장해서 3차원 공간 에서 “구조”를 생각하는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1874년, 판트호프와 레벨이 탄소가 주위 원자들과 결합하는 구조는 정사면체 구조를 이루어야 한다는 가정을 도입해 광학 활성을 설명한 것입니다. 13년 뒤인 1887년, 판트호프는 그간의 발전을 정리하면서 “공간의 화학”이 점차 자리를 잡고
bottom of page

